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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교회』성경은 사실인가 #역사적 증거

by 쏨♡ 2022. 6. 9.
성경은 사실이다. #역사적 증거

고레스 대왕의 실린더는 성경이 사실임을 증명한다.


과학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부분을 살펴보았을 때 성경은 더 사실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나님은 세계사의 일부를 역사가 이루어지기 이전에 성경에 미리 기록해 놓으셨다.
성경은 고레스를 바벨론의 정복자로 콕 찝어서 언급하고 하나님의 선택한 도구로써 유대 민족을 바벨론에서 포로 된 상태에서 해방 시킬 것 이라고 예언하고, 설명하고 있다.
당시 고레스는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이방 나라의 왕이 였지만,
고레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들의 고향인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내고,
느부갓네살이 파괴시킨 그들의 성전과 예루살렘을 재건하도록 도왔다.
이 역사는 학자들도 부인하지 못하는 성경 예언 중 가장 드라마틱하고, 극적인 예언성취 중 하나로 손꼽힌다.

전쟁의 신 고레스, 지중해를 정복하다.

이미지를 누르면 해당기사로 갑니다.


이란 국가 탄생의 아버지라고 불리고, 대제라는 이름을 역사상 처음으로 사용하게 되었던 고레스.
고레스는 중세 왕조를 물리 치고, 이란 부족들을 단합 시킴으로써
최초의 세계 제국인 메대(성경용어; 미디안 제국)를 창설했다.
그의 군대는 중앙 아시아 및 서남아시아와 유럽 일부까지 진출하였다.
500 B.C까지, 페르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제국이었고, 그 강성함은 로마제국이 가장 부강했던 4세기 로마제국의 크기와 부를 넘어서는 수준이였다고 하니 당시 고레스가 지배했던 페르시아가 얼마나 강성한 제국이였는지짐작할 수 있다.
고레스 이전의 통치자는 아스티아게스 왕으로, 강력한 메대의 왕이였으며, 고레스의 외할아버지기도 했다.
고레스는 자신의 외할아버지인 아스티아게스를 반역하여 메대를 정복하였는데, 그것은 그의 전쟁의 서막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의 전쟁은 아이러니하게 그의 공격에서 시작하지 않고, 오히려 적들에 침략에 의해서 시작했다.

메데, 최초의 제국이 되다.

고레스 vs 아스티아게스


메대의 통치자 아스티아게스,
그는 자신의 외손자인 고레스의 세력이 점점 커지는 것을 두려워해 급기야 그를 죽이기로 작정하는데,
충신이였던 그의 장군 하르파거스를 그 작전의 대장군으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하르파거스는 고레스의 이중 첩자였다.
그는 고레스에게 아스티아게스의 계획을 알리고, 메대 전체를 고레스가 먼저 공격하도록 독려했다.
이때 메대 귀족들 중 일부는 아스티아게스에서 고레스로 넘어갔고,
고레스는 귀족들이 소유한 상당수의 군대를 전쟁에 활용할 수 있었다.
결국 BC 550까지 3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메대는 고레스에게 정복 당했고, 고레스는 제국의 위대한 왕이 된다.

팀브라의 전투(BC 547): 49,000 페르시아군 vs 105,000 리디아군


그러나 메데왕 아스티아게스의 죽음은 또 다른 피의 전쟁의 서막이 되었다.
3년후, 리디아(현 터키)의 왕인 크로수스는 아케메니아를 침략했다.
고레스는 그의 군대를 모으고, 크로수스의 군대를 고지대에서 맞이한다.
리디아와 페르시아 군대는 기병이었다.
그들은 병거의 앞에 도열해 있었다.
크로수스는 밀집대형으로 유명한 이집트 군을 거느리고 있었고, 고레스도 비밀 병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페르시아 사령관은 고레스에게 조언하기를
리디아의 말들은 낙타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낙타 향기는 적들의 말들을 혼란에 빠지게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고레스의 허락하에 새로운 낙타 군대가 조직되었다.
새로운 낙타 군대가 뛰어 나오고, 리디아 보병과 기병이 혼란에 빠진 사이,
고레스의 궁병은 진지와 방어탑에서 쉴새 없이 화살을 쏘아댔다.
페르시아 사령관의 예측대로 리디아 군대는 큰 혼란에 빠져갔다.
어떤 기병은 놀라서 떨어지기도 하고, 말을 버리고 도망가기도 하였다.
크로수스는 전장에서 탈출했다.
고레스군은 리디아 군대를 전면에서 포위하였고, 리디아 군대는 저항하기를 계속했다.
끈질긴 리디아군의 저항에 감동을 받은 고레스는 항복 협상을 제안했다.
리디아군은 도망간 크로수스를 위해서 목숨을 걸 필요는 없었다.
리디아 군인들은 고레스의 군대가 되는 조건으로 목숨을 보장받을수 있었으며
이제 고레스군의 일부가 되었다.
고레스는 승리하였다.

페르시아는 지중해 전역의 신흥 권력으로 떠올랐고,
그 공세는 겉잡을 수 없이 커졌으며, 주변 국가들은 벌벌 떨면서
이 무적의 정복자의 위세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540 BC까지, 고레스는 엘람의 수도 수사를 정복했지만,
아직도 서아시아에는 큰 힘이 남아있었으니 바로 신바벨로니아 제국(바벨론) 이였다.
이제 고레스는 바벨론에 눈을 돌린다.

바벨론, 고대세계의 미스테리


메소포타미아, 이곳은 세계 4대 문명의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발생한 곳으로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에 위치해 있다.
2,500년전, 그 곳의 심장부에서 거대한 도시가 등장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바벨론이다.
이 거대한 바벨론은 세계의 경의로움 중 하나로 세계 7대 불가사의인 공중정원이 건설된 곳이다.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우뚝 솟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살고 있었고,
성문은 광이 나는 동으로 지어졌으며, 느부갓네살 왕 시절부터 호전적인 사람들이 살았다.
느부갓네살왕의 잔인하고, 조직적인 바벨론 군대는 이스라엘을 포함해서 그 주변을 다 점령했다.

바벨론의 포로가 된 이스라엘 (587 B.C)

렘 25:11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예루살렘이 멸망되고, 70년간 바벨론의 포로가 되는 이 끔찍한 예언은 결국 성취되고 만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을 무너뜨리고, 솔로몬이 건설한 성전의 보물들을 모두 약탈해 갔다.
예루살렘은 완전히 발가벗겨지고, 성전은 불타서 무너져 버렸으며,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쓸모있는 것들은 모두 바벨론으로 가져가 버렸다.
유다 민족의 지도자들은 학살당하고 남은 자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끌려갔다.
수 만명이 넘는 민족의 지도자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잡혀갔고,
결국 시드기야 왕도 그의 운명을 피할수 없었다.

시드기야 왕(BC 597-586)은 야반도주를 시도하다가 걸려 사슬에 결박되어 끌려가는 수모를 당했으며,
왕의 아들들은 그의 눈 앞에서 죽임을 당하고, 그도 눈을 뽑혀 장님이 되고 말았다.
이제 유다는 가장 빈천한 자들만 남아 유대의 언덕을 지키게 될 뿐이였다.
그들은 예레미아 예언의 70년을 마치기까지 고난의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유대민족이 이런 수모와 고통을 당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였기 때문이라고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분명히 말씀 하신다. (렘 44:22-23)

바벨론의 함락과 제국의 멸망 (539B.C)


바벨론 성은 국제적인 도시였고, 세계 교류의 중심으로 번성했다. 하지만, 엄청난 속도로 멸망한 도시가 되었다.
아무도 깰 수 없는 위용을 자랑하며, 엄청나게 강력했던 바벨론의 성벽은 적으로부터 바벨론을 지킬 수 없었다.
원래 큰 댐도 안에서 뚫린 개미 구멍에서 무너지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느부갓네살의 손자인 벨사살이 왕이 되었다. 그는 잔인하고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오직 자신만의 쾌락과 기쁨만을 추구하였고,
그의 통치하에서 이 거대하고 고고한 바벨론은 죄와 사악함만이 감돌 뿐이었다.
그리고, 멸망의 시간이 다가왔다.
바벨론 성의 외부는 이미 고레스에게 정복당했다.
고레스 삼촌인 다리우스도 진을 치고 고레스를 돕고 있었다.
메대와 바사 연합국의 바벨론 정복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벨사살 왕은 연회를 시작했고, 많은 인사들을 초빙하여, 그의 위대한 왕위를 자랑하는 잔치를 벌였다.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도 못한 채 말이다.
메데와 바사, 이 무적의 연합군은 2년이나 바벨론 성 밖에서 진을 쳤고,
헤아릴수 없는 수 많은 군사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고레스는 모든 인력을 동원해서 유프라테스 강 상류에 둑을 쌓아
바벨론 성을 감싸고 있는 강의 수위를 낮추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강뚝을 따라서 그의 군대를 바벨론 성 코 앞까지 진격시키는데 성공한다.
한번 성문이 열리기 시작하자, 그의 군대들은 물밀듯이 바벨론 성으로 밀려 들어갔다.
경비원들은 죽임을 당했고 군대는 주요 인사들이 잔치에 취해 있는 동안 도시를 습격했다.
풍악 소리에 군대의 진입은 거의 무혈입성 수준이었다.
갑자기 엄청난 규모의 군대가 파티장으로 난입했다.

“적들이다! 적들이 침입했다~”

이미 발견한들 어찌하리.
이미 적들은 코 밑까지 들어온 상태였고, 모든 사람들은 순식간에 항복했으며,
그야말로 아비규환 속에 마지막 왕 벨사살은 고레스의 손에 바로 사로잡혀 버렸다.
바벨론이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것이라 확신했던 벨사살은 무적의 적군의 의해 순식간에 사살되었다.
그의 왕국은 썩었고, 파괴되었으며, 한방에 멸망당하고 말았다.
아무도 다시 거기에 살지 않을만큼 말이다.
사람들이나 짐승들도 영원히 살수 없었다.
이 사건은 유대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이 되고 말았다.
70년동안 바벨론 강가에서 울면서 지냈던 유대인,
이제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세울 준비를 하게 되었다.

인류 최고의 고고학 유물 고레스 실린더가 성경이 사실임을 증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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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박물관 52호실. 이란의 고대 역사가 저장된 곳이다.
그곳에 럭비공처럼 생긴 점토가 하나 전시되어 있는데 그 점토의 이름은 고레스 실린더이다.
2,500년 전 고레스는 이 구운 진흙 통에 그의 견해와 법률에 대한 역사적인 선언을했다.
이 실린더는 여성의 권리, 종교적 관용, 개인의 자유 등을 포함한 최초의 인권 선언문이다.
이 실린더는 단순히 고고학적으로 중요한 보물이 아니다.
성경이 사실이라는 놀랍고도 신기한 사실을 증명하는 도구인 것이다.

역사적 순간 ,
최초의 인권이 탄생하다.


539 BC, 고레스는 바벨론을 정복하였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를 정복자로 칭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를 독재자에서 해방하여 구해낸 사람이라 표명하였고, 전례없는 일을 행하였다.
고레스는 그의 바벨론 정복 이후에 70년동안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던 유대인들을 해방시켰다.

에스라 1:1~3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정복하면, 정복된 국가의 재산, 노예나 포로는 정복한 국가의 것이 된다.
예를 들어, 불과 수십년전 한국은 일본에 의해 점령당했다.
일본 사람들은 점령 이후 현지 사람들에게 매우 가혹했다.
대규모 군대가 사람들에게 폭력 범죄를 많이 저질렀다.
그들의 폭력적인 행동은 국민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일본 식민지 시대에 서울의 많은 왕궁들을 심하게 헐어 버렸다.
서울의 다섯 궁궐 중 하나인 창경궁은 궁전에서 강등되어 공원과 동물원으로 변모하면서 큰 피해를 입었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한 일이다. 특히 고대에는 더욱 그러했다.
고레스가 바벨론을 정복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 민족도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여전히 페르시아 민족을 섬기는 노예가 되는 것이 당연한 상황이었다.
바벨론이 페르시아에게 정복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사적 반전이 발생했다.
고레스가 정복한 나라의 노예였던 이스라엘 백성을 자유롭게 놓아주고,
더욱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 할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고,
더욱이 국고를 사용하여 물질적인 도움을 주었다.
신비롭지 않은가?

고레스의 극단적인 특이점


고레스 실린더는 발견된 직후 또는 직전에 부서져 있었는데 지금은 여러 조각이 함께 고정 되어 있다.
짜맞추기 처럼 그저 추측 밖에 할 수 없었던 고레스의 행동.
고레스가 한 국가를 정복할 때 모든 정복자들이 했던 방식을 깨뜨린 그의 극도의 특이함은 설명이 될 수가 없었다.
역사 학자들도 이 아이러니한 문제를 오랫동안 풀지 못했는데,
놀랍게도, 그의 정말 특이한 행동이 설명될 단서가 성경에 명확하게 등장하고 있다.

에스라 1:1~3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만약 고레스가 그 당시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다면,
그는 “너희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고, “우리 하나님”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그런데, 고레스는 하나님을 “너의 하나님”이라고 칭했고,
그것은 고레스는 하나님을 정식적으로 믿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당시 메대-바사 연합 왕국은 전통적으로 태양신을 숭배하는 조로아스터교를 믿었다.
정복된 국가의 오랜 종으로 살고 있던 이스라엘을 종 삼지 않고, 그들의 신의 말만 믿고 해방했다.
게다가, 믿지도 않은 이방신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도록 자신의 창고를 열어서 지원했다.
신기하지 않은가?

고레스는 왜 그랬을까?


사 45:1~3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

고레스는 자신이 바벨론을 정복하기 170년 전에 쓰여진 성경, 이사야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책에는 분명히 자신의 이름 “고레스”가 명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고레스는 왕이될것이며,
여러 나라를 쳐 부술 것이고 궁극의 절대강자 바벨론을 무너트릴 예언이 되어 있었다.
놀랍게도, 그가 할 많은 일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자세히 기술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만약 당신이 고레스라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고레스는 여러 나라를 정복한 승리의 정복자, 고대의 뛰어난 용사로 알려져 있다.
그는 주변의 적들을 차례로 쳐부수면서 바사 제국의 최고의 리더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런 것이, 자신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시나리오로,
미처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이미 170년 전에 고레스의 이름을 부르고, 그에게 왕의 지위를 준 것이다.

고레스는 이사야 예언과, 지금까지 자신에 관한 모든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그들의 하나님의 자신의 손을 잡고, 그의 모든 운명을 개척한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고레스는 이스라엘 민족들을 해방하고 본국으로 송환할 마지막 예언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이 고레스가 인권의 첫 번째 선언을 할 수 있었고 노예 제도에 “No”라고 말한 최초의 인물이 된 것이다.

고레스 실린더 자체는 성경이 사실임을 증명한다.


고레스 실린더는 고대 아카디아 문자로 기록되어 있었고, 1879년 바벨론에서 발견되었다.
이것은 고레스의 바벨론 재건의 기념비적인 내용을 기록해 놓은 것이다.
이 글은 바벨론과 고레스, 그리고 정책의 기본적인 내용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본문에서 고레스는 그가 바벨론 성벽의 일부의 방어 기능을 강화하고,
유프라데스 강을 따라 도시 성벽을 제조된 벽돌을 이용해서 완공했다고 한다.
그리고 어떻게 고레스가 사로잡은 포로를 해방하여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
그들의 성전을 건축하게 허락했는지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또한 고레스는 약탈되었던 성전 기명들까지 공적 자금을 투입해 복구한 내용도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완전히 성경에 있는 내용과 일치한다.

고레스 실린더, 압도적인 증거인가?


고레스 실린더 발견 이전, 역사가들은 고레스에 대하여 성경에 쓰여진 부분에 대하여 의심하였다.
왕이 많은 돈을 들여 전쟁해 놓고서, 잡은 포로를 풀어주는 것이 말이 안되는 소설같은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린더 발견 이후, 그들의 이런 의혹은 말끔하게 씻겨지고, 성경에 기록된 그의 선포가 진실임을 알게 되었다.
회의론자들은 성경이 주장하는 고레스의 이스라엘 해방 역사가 처음에는 소설로 생각했던 것 같다.
‘왜 정복자가 가장 큰 재산을 값없이 내 주었겠는가?’ 하는 생각에서 말이다.
하지만, 고레스 실린더 발견 이후 성경이 사실이란 것은 역사가들도 부인할수 없게 되었다.

2,010년에 더 큰 발견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고레스 실린더의 내용이 작은 판 형태로 제작되어 있는 것을 대영제국 박물관 팀이 발견된 것이다.
이 조각들은 원래 바벨론의 남부 지방에서 출토되었는데,
이 조각의 발견의 의미는, 고레스 칙령이 다른 중요 도시들에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고레스 실린더의 내용이 왕의 어명으로써 전 바사 제국 뿐만 아니라
고레스가 통치한 주변 국가에 모두 배포되었다는 강력한 증거이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고자 하고,
그래서 국고를 지원 했던 왕의 의지가 담긴 고레스 칙령은 바사 제국의 통치하에 있는 모든 나라에 배포된 것이고,
그 내용이 성경 에스라에 기록된 것과 완전히 일치하다면 성경이 사실이라 받아들이는것이 훨씬 합리적이지 않은가?

고레스, 그 낭만의 휴머니스트


고레스는 모든 지역에 자치권을 주고, 주권을 보장했다.
이런 통치 시스템은 최초였고, 헬라 제국이나 로마 제국이 그 영향을 받아서 유사한 방식으로 통치하게 되었다.
헬라 제국은 알렉산더 대왕때부터 시작하게 되었고, 로마는 제국이 확장 되었을 때 채택 하였다.
또한, 고레스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최초의 인권운동가였다.
인권이 없고 세상이 야만과 노예만을 알고있었을 때 고레스는 그가 정복한 모든 인종들조차 존경했다.

그의 인도 주의적 아이디어는 다민족 국가인 미국의 창시자를 포함하여 전세계에 퍼졌다.
1977년부터 고레스실린더의 복제본이
모든 인류에게 똑같은 인본주의적 아이디어의 중요성을 상기시키기 위해 유엔 (UN) 홀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
수천년 세월동안 이렇게 광범위하고, 엄청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고레스 자신은 상상이나 했을까?.
그는 정치에도 귀재이고, 사람들을 다루는데에도 능숙했다.
역사학자들은 그를 인본주의자로 부르고,
유대인들은 그를 메시아로 부른다(그는 성경에서 메시아로 불리는 유일한 이방인이다).
그에게 정복을 당한 그리스인들 조차 그를 정의로운 입법자이자 대단한 통치자로 부른다.
세계에 영향을 미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을 찾고 있는가?
그렇다면 고레스는 “대왕”이라는 호칭을 누릴 자격이있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이다.


성경은 사실이다 - 역사학을 통한 증거 - The Bible is Fact

고레스 대왕의 실린더는 성경이 사실임을 증명한다. 성경은 고레스를 바벨론의 정복자로 콕 찝어서 언급하고 하나님의 선택한 도구로써 유대 민족을 바벨론에서 포로 된 상태에서 해방 시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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