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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교회』예루살렘, 평화의 도시 vs 중동의 화약고

by 쏨♡ 2022. 8. 10.

 

예루살렘, 평화의 도시 vs 중동의 화약고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고대 이스라엘 통일왕국 제2대 왕이었던 다윗왕 때부터 유대인들은 물론 그리스도인들의 성지다. 그러나 성경은 하늘의 새 예루살렘을 주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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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지리와 정보


예루살렘(영어: Jerusalem, 히브리어: יְרוּשָׁלַיִם(예루샬라임))은

지중해 동쪽 약 55km, 사해 서쪽 25km 지점의 고원지대에 위치한 도시다.

1967년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있지만

국제법상 어느 나라의 소유도 아니다.

이스라엘의 행정수도는 텔아비브다.

현재 도시화된 예루살렘은 성경 속 예루살렘에 비해 크게 확장되어 있다.

북동쪽에 위치한 구시가(Old City)에 성경의 배경이 된 고대 예루살렘이 세워져 있었다.

당시 동쪽으로는 기드론 골짜기, 남쪽으로는 힌놈의 골짜기가 둘러싸고 있었다.

예루살렘 구시가에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성지로 여기는 장소가 밀집되어 있다.

면적이 1㎢ 정도밖에 되지 않는 구시가는

유대인, 기독교인, 모슬렘, 아르메니아인 4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생활하고 있다.

2000년 예루살렘 통계 연감(Statistical Yearbook of Jerusalem)에 따르면

예루살렘에는 1204개의 회당, 158개의 교회, 73개의 모스크(이슬람사원)가 있다고 한다.

구시가 동쪽에는 예수가 승천한 감람산(Mount of Olives)이 있다.

감람산 기슭에는 예수의 수난이 시작된 겟세마네동산, 솔로몬이 성전을 세웠던 성전산(Temple Mount)이 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모리아산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성전산에 남아 있는 옛 성벽의 일부인 통곡의 벽(Wailing Wall)은 유대교에서 최고의 성지로 여기는 기도처다.

알아크사 모스크(Al-aqsa Mosque)는 이슬람교의 교조 마호메트가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는 바위 위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슬렘들이 메카, 메디나에 이어 세 번째로 꼽는 성지다.

구시가 북서쪽에는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올랐던 골고다(갈보리) 언덕이 있다.

이곳에는 성묘교회(거룩한 무덤 성당, Church of the Holy Sepulchre)가 세워져 있다.

성묘교회는 가톨릭, 그리스정교회, 콥트교회, 시리아정교회, 아르메니아정교회 등 여러 교파가 구획을 나누어 사용하고 있다. 교회 열쇠는 모슬렘이 갖고 있다.

구시가 남쪽 시온산 인근에는 다윗왕의 가묘, 예수가 최후의 만찬을 했던 마가의 다락방, 실로암 연못 등이 있다.


예루살렘의 역사

고대의 예루살렘


B.C. 14세기경의 아마르나 문서(Amarna Letters)에는 예루살렘이 ‘우르살림(Urusalim)’으로 불렸던 기록이 있다.

성경에 따르면 ‘여부스’라고도 불렸다.

예루살렘이 처음으로 언급되어 있는 성구는 여호수아 10장 1절이다.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가나안을 정복해나가던 때였다.

당시 예루살렘의 왕은 아도니세덱이었다.

학자들은 창세기 14장의 살렘이 예루살렘일 것으로 추정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멜기세덱도 예루살렘의 왕이었던 것이다.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인연은 아브라함 시대로 거슬러올라간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시로 가족들과 함께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을 거쳐 가나안으로 이주했다.

오늘날의 이스라엘 지역이다. 아브라함은 예루살렘의 모리아산에서 일생일대의 테스트를 치렀다.

후에 아브라함의 후손 야곱 일가는 이집트로 이주하여 하나님의 예언대로 430년간 이방의 객이 되어 살게 된다.

이집트를 나온 것은 B.C. 1498년경 유월절을 지킨 직후였다.

이스라엘은 모세의 영도하에 40년의 광야생활을 하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입성했다.

가나안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게 분배되었다.

이스라엘은 사사시대를 거쳐 이스라엘 통일왕국시대를 맞는다.

제2대 왕이었던 다윗은 예루살렘으로 언약궤를 옮긴 후 왕국의 수도로 삼았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완공한 후에는 신앙의 중심지로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예루살렘은 신성불가침의 성역이 되었지만 나라와 종교 간에 뺏고 뺏기는 분쟁의 역사가 되풀이된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비평가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는 예루살렘을 두고 “종교들의 도살장”이라고 비꼬았다.

예루살렘은 B.C. 586년경 신바빌로니아(바벨론)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느부갓네살)에 의해 함락당한다.

이때 솔로몬이 세운 예루살렘 성전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많은 유대인들이 포로로 끌려갔다.

이후,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고레스)가 신바빌로니아를 정복하고 유대인들을 해방시켰다.

본국으로 귀환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성전을 재건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후 헬라에 이어 로마의 지배 아래 박해를 받는다. 유대인들은 로마에 대항하여 전쟁을 일으켰다.

A.D. 70년 예루살렘은 티투스가 이끄는 로마군에게 함락당했다.

도시는 불길에 휩싸였고, 수많은 희생자들과 함께 잿더미가 되었다.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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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예루살렘 - 십자군 전쟁


예루살렘이 이슬람교의 손에 들어간 것은 637년이었다.

예루살렘은 참회와 순례를 위한 순례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랍계 사라센은 상업적인 목적으로 순례객들을 후대했다.

1076년 터키계 사라센, 셀주크튀르크(Seljuk Turk)가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부터는 순례를 방해하고 나섰다.

십자군전쟁의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순례객들이 위험에 처하고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이 군사적으로 위협을 받자

동로마제국의 황제는 교황에게 지원군을 요청한다.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1095년 11월 프랑스의 클레르몽에서 종교회의를 소집하고 성지 탈환을 호소했다.

로마가톨릭교회는 교황의 주도하에 원정군을 모집했다. 모집 요강은 대략 이러했다.

 

• 종군자의 가족과 재산은 교황이 보호해준다.
• 종군자의 모든 죄는 용서받을 수 있다.
• 형무소에서 복역 중인 자가 종군하면 세상의 법적인 죄와 종교적인 죄도 모두 용서받는다.
• 종군자의 빚은 탕감되고 전사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
• 동방에서는 성자의 유골, 금은보화, 미녀가 많으니 얼마든지 전리품으로 가져올 수 있다.

 

파격적인 조건에 가난한 민중과 농부 등 수많은 사람들이 종군에 지원했다.

그들은 이교도들을 소탕하고 예루살렘에서 전사하면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중에는 순수한 청년, 사기꾼, 불량배, 수감자도 끼어 있었다.

1096년 가을 1차 원정을 시작으로 모두 9차에 걸친 대전투가 벌어졌다.

오합지졸로 구성된 십자군은 어느새 교황이 약속했던 금은보화와 미녀를 찾아다니는 강도단으로 돌변했다.

약 200년 동안 가톨릭과 사라센 사이에 벌인 십자군전쟁은 사라센의 승리로 끝이 났다.

십자군전쟁이 “교황의 실패작인 성전(聖戰)”이라 불리는 이유다.

‘십자군’이라는 말은 종군을 할 때 오른팔과 어깨에 붉은 십자가 휘장을 붙였기 때문이다.

 


근현대의 예루살렘


19세기 말, 유럽의 유력한 유대인들을 시작으로 시오니즘이 일어났다.

그 성과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나타났다.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이후 이스라엘은 네 차례에 걸친 중동전쟁에서 승리하여 예루살렘을 수복한다.

로마군의 공격으로 예루살렘이 멸망한 지 1900년 만의 일이었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름과는 정반대로 ‘중동의 화약고’라 불린다.

세 종교(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와 두 민족(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 혈전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21세기의 예루살렘은 다윗이 추구했던 신앙의 거점으로서의 색채는 찾아보기 어렵다.

흥미로운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이 지닌 신성한 이미지는 여전히 퇴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경이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다고 예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성경이 지목한 평화의 도성은 중동의 예루살렘이 아닌

하늘의 새 예루살렘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새 예루살렘에 대해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