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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예배는 왜 드려야 하는걸까요? 하나님의교회에서 알아보세요!

by 쏨♡ 2020. 5. 24.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어떤분이 "불교는 아무때나 내가 가고 싶을때 가는데 왜 유독 기독교는 의무처럼 매주마다 가야하는거냐??"라고 물으시더라구요.

뭐, 불교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해 답은 못하겠으나,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는 아주 소중한 의미가 담겨있기에 매주마다 하나님 앞에 약속된 시간에 나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얼마나 소중한 의미가 담겨있는지에 대해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https://pixabay.com/

 

예배의 의미

성경에서 살펴보게 되면, 예배는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등장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라 아벨과 가인의 첫 제사에 대해 성경은 증거합니다.(창4:1-5)

 

예배의 기본은 "회개와 죄사함"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예배에 나아올 수 없었고, 예배에 나아오지 못하면 죄사함을 받을 수 없는것이죠..

즉, 하나님 앞에 회개한 영혼과 회개하지 못한 영혼의 판단기준은 "예배"입니다.

 

그러니 죄사함을 바라는 우리들이 하나님께 올바른 예배를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레 4:1-3/13-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금령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였으되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으로 죄얼을 입게 하였으면 그 범한 죄를 인하여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릴찌니 / 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금령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여 허물이 있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 그 범한 죄를 깨달으면 회중은 수송아지를 속죄제로 드릴찌니 그것을 회막 앞으로 끌어다가 회중의 장로들이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그 수송아지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서 그 제사장이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여호와 앞, 장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속죄제물은 속죄의 의미뿐만 아니라 죄인은 회개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죄"를 깨달은즉, 하나님 앞에 나아와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사 또는 예배라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짐승처럼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이였습니다." 고백하며 나 대신하여 짐승을 속죄제물로 바치는겁니다.

그렇기에 통회하는 마음으로 나와야 할 자리, 바로 예배입니다.

 

레 16:6-10 / 20-22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권속을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 두 염소를 취하여 회막문 여호와 앞에 두고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 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찌며 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대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찌니라 / 그 지성소와 회막과 단을 위하여 속죄하기를 마친 후에 산 염소를 드리되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찌니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무인지경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찌니라

 

예배에는 죄를 용서받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모세에서 예수님오시기까지, 1500년동안 얼마나 수많은 짐승들이 희생을 당했을까요?

그 짐승을 끌어다, 나의 죄를 고하고 그 짐승이 속죄제물로 희생 당함을 바라볼때,

그들은 어떤 마음이였을까요?

 

"두번 다시 이런 죄를 짓지 않겠노라"는 마음으로 그 짐승의 죽음을 봐야하지 않을까요?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언약 "새언약"의 예배

 

히 7:11-12 / 21-24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 제사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 /   예수께서 제사장 된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저희는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자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저희 제사장 된 자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새언약 제사의 직분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께 드릴 제사 (예배)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 입니다.

 

히 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영원히 변치 않을 그 제사의 직분으로 말마암아 우리를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원히 변치 않을 제사 직분은 무엇일까요?

 

히 5:8-10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아들의 입장으로 오신 예수님, 그를 가리켜 멜게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하셨습니다.

즉,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는 그 제사직분, 곧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입니다.

 

https://youtu.be/H-__FcVBAEU

 

오늘날 역시 우리는 영원히 변치 않을 예수님의 진리로 말마암아 온전한 구원을 입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전파하신 진리대로 예배를 드립니다.

온전히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그 진리, 반드시 알아야 하고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멜기세덱의 반차는 구체적으로 어떤 진리를 담고 있어야 할까요?

 

다음시간에 더욱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ᴗ·